지온공국의 콜로니에서 홀애비 군인인 아버지와 두 남동생을 돌보며 기운차게 살아가는 억척소녀 '마리코 스타마인'은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붉은 혜성 아저씨'(...)에게서 선물받은 마법의 빨래털개(...)의 힘을 빌어 천하무적의 팔등신 미녀군인 '블라스터 마리'로 변신, 콜로니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악하지만 약간 멍청한 연방 특무대(...)를 물리치고 일약 영웅이 된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아버지를 사모해 온 이웃집 처녀 메어리가 난데없이(...) 새엄마 후보로 나타나는 바람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마리코는 홧김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전투에 말려들어 마법의 힘을 잃고 우주에 표류하는 신세가 되는데...
1989년 6월부터 1990년 3월까지 반다이 출판부에서 펴낸 잡탕 앤솔로지 '사이버 코믹스'에 연재되었던 이케다 케이의 건담 관련 패러디 만화. 1년전쟁 말기를 배경으로 마법소녀와 홈드라마라는 건담 시리즈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듯한 테마를 짜넣어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전개하다가 기상천외한 위기상황을 발동시켜 주인공의 참된 성장을 유도한 뒤에 가슴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진귀한 작품. 쌍둥이 남동생의 이름이 '반'과 '다이'(합치면 반다이...)라던가, 라스트에 새로 태어나는 쌍둥이 여동생의 이름이 '제나'와 '가이나'(담요를 보면 잘 알겠지만 '제너럴 프로덕츠'와 '가이낙스'의 패러디)라던가, 클라이막스에서 (절대 MS덱이 있을 리가 없는 위치에서) 건버스터처럼 잘난듯이 팔장끼고 출격하는 포즈를 보여준다던가 등등, 지금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당시에는 꽤 웃겨줬을 장난도 몇 개 들어있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변신소녀라는 설정은 <마법의 천사 크리미 마미>(국내명 '천사소녀 새롬이')의 영향을 받았으며 주인공의 풍성한 헤어스타일이나 앞뒤 가리지 않는 박력만점의 성격은 게임 <드래곤퀘스트 4>의 여성용자 캐릭터에서 따온 듯하다. 변신 후에는 운동능력이나 MS 조종능력 등이 향상되는 반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이를테면 집안일) 등은 반으로 줄어든다는 설정도 사소하지만 꽤 웃겨준다. 기지에 방치되어 있던 구형 자쿠(마리코 본인은 한자를 잘못 읽어서 '1일 자쿠'(...)라고 부른다)를 멋대로 끌고 나가 마법 빨래털개(나중에 파워업하여 마법 파리채(...)가 된다)를 거대화시킨 무기로 적 MS들을 엉덩이 맴매(...)로 퇴치한다는 전법도 특이하다.
변신을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마리코 본인의 정신연령은 어린이 그대로이며 전체적인 내용도 스타마인 일가의 홈드라마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의외로 전투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머리에 드릴을 달고 콜로니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지중형 GM'이라던가 콜로니 전체가 거대 MS로 변하여 사상 최고의 패닉을 불러일으키는 '자쿠 Z' 등등 각종 기상천외한 메카가 등장하여 독자들을 뒤집어지게 하며, 클라이막스에서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붉은 혜성 아저씨'(샤아이긴 하지만 샤아가 아니다)가 마법을 잃은 마리코에게 다시 힘을 북돋워주면서 '앞으로도 인간들은 어리석은 전쟁을 되풀이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인류를 포기하지 않겠다. 너희 가족처럼 서로 믿고 사랑하는 인간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라는 일장연설을 들려주는 장면에서는 작가가 의외로 (퍼스트) 건담의 본질을 잘 파악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다이 출판부에서 나온 단행본은 이미 오래전에 절판 상태여서 오랫동안 제목만 알고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다가 몇년 전 류지님 댁에서 우연히 그때의 판본을 구경하고 감명을 받았는데, 때마침 2004년에 미디어웍스에서 복각본을 내준 덕에 다시 한 번 찬찬히 감상할 수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단순소박한 패러디에 '이게 뭐야' 싶을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판타지 요소를 섞은 개그 홈드라마로 보면 그런대로 재미있다. 건담을 무조건 진지한 눈으로 보는 팬들에게는 사도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깨는 발상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물건도 있는 편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저자 이케다 케이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그다지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여자 야구선수를 그린 스포츠물 <무적의 비너스>가 대원씨아이에서 전권 발매된 바 있다. (시이나 아유미의 동명작품과 혼동하지 말 것) 다만 이것도 벌써 3년 전에 나온 거라 지금도 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