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권을 둘러싼 전란이 일단락되고, 잠깐 동안의 평화가 찾아온 우주세기 0090. 지구연방의 정책에 반기를 든 스페이스노이드들의 불만은 점점 고조되어, 통상의 반대운동 수준을 벗어난 테러리즘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콜로니 공사를 중심으로 한 재건계획이 시작된다. 하지만 파괴된 콜로니는 반연방조직의 아지트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 재건 작업에는 연방군의 호위가 필요했다.
주인공 다리 건즈는 콜로니 공사의 하청업체인 모노톤사의 직원으로, 우주공간에서의 여러 가지 작업에 정통한 건설 작업꾼이다. 그는 또한 소문난 건담 오타쿠로, 자기의 작업용 MS까지 건담 비슷한 형태로 개조하여 몰고 다니는 열성을 보인다. 서포트 스탭이자 여자친구인 체리 로지즈와 충실한 정비사인 아인과 한 팀으로 활동하는 다리는, 1년전쟁 때 심하게 파손된 텍사스 콜로니의 해체작업에 착수한다. 연방군의 MS테스트함 '아라하스'도 신형기의 실험을 하기 위해 그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 근처에는 반연방조직 '카라드'의 전위부대인 NSP의 아지트가 있었다. 연방군에 발각될 것을 우려한 NSP는 미사일로 선제공격을 가하여, 아라하스와 다리 일행의 호위를 맡고 있던 살라미스급 전함 '아르테미스'가 격침되고 만다. 격분한 다리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기의 작업기인 'D건담'을 몰고 적의 즈사 부대에게 돌진하는데...
<더블 페이크>는 현재는 폐간된 반다이의 오피셜 소식지인 '모형정보'지 1988년 7월호부터 1989년 4월호까지 연재된 건담 외전 코믹스다. 저자인 우시다 유지는 그렇게 눈에 띌만한 작가는 아니고, 이 작품 외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본작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반다이 출판부 계열의 각종 무크나 잡지를 통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수많은 건담계 코믹 중 하나로, 반다이에 의해 단행본으로 나왔다가 절판된 이래, 2002년 12월 15일에 미디어웍스에서 'Derivation from GUNDAM SERIES'라는 레테르를 붙인 재발행본이 나왔다. (잠본이가 구한 것은 이 미디어웍스 판이다. 반다이 판에 실렸던 같은 작가의 단편 <알마리아> 외에, 다리 일당의 후일담을 그린 < It's Wonderful World >가 추가 수록되어 있다. 수년 전에 반다이판을 구할 기회를 놓치고 무지하게 실망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새옹지마?)
사실 작품 자체만을 놓고 보면 이 만화의 퀄리티는 바닥을 기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끔찍하다.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고 동인출신에서 곧바로 상업지로 넘어온 얼뜨기 작가들이 자주 보여주는 결점이 전부 다 튀어나온다. 그림체의 변화가 심하여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가 힘들고(심지어 저자 본인도 컷 옆의 궁시렁거리는 글자 속에 '또 지난회와 얼굴이 바뀌었다아~'라고 한탄하고 있을 정도니...) 액션신의 묘사도 불친절해서 뭐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건지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괜찮은 아이디어나 설정은 한가득 집어넣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요리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여 스토리와 설정이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붕 뜬 느낌을 준다는 것도 문제다. (어려운 용어를 잘난듯이 대화 속에 집어넣은 주제에 각주에는 '물리선생에게 물어보세요'라고만 해놓고 줄행랑을 치는 장면까지 있다 -_-)
작품 자체의 분위기가 그런 탓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의 행동에 개연성이 부족하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느슨하기 그지없어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날 정도다. (전투부대가 아닌 실험부대인 탓에 무사태평으로 일관하는 아라하스 승무원들, 처음에는 되게 위협적으로 나오더니만 점점 뭘 하는 건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NSP멤버들과 네오지온 부대, 주인공의 라이벌인 것처럼 온갖 폼은 다 잡은 주제에 갈수록 초점을 벗어난 개그만 하고 본 줄거리에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NSP파일럿 모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변상황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무조건 러브 앤드 피스로 몰고가는 열혈총각 다리군의 제멋대로인 행동이 장난 아니게 탈력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일반 만화팬은 물론이고 건담 팬에게도 솔직히 권할만한 물건이 절대로 아니다. (잠본이같이 괴상한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작품 외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위에 언급한 일련의 건담외전 코믹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당시의 반다이 우주세기 공식연표에 실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그 연표를 작성한 설정제작집단 신도샤가 본작을 눈여겨 보았거나 혹은 본작의 설정 자체에 관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작의 등장 MS는 90년대 이후의 'MS대전집'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아시는 바대로 최근에는 'SD건담G제너레이션' 시리즈에도 본작의 등장 기체가 게스트 출연했다. 작년에 나온 '설정집을 빙자한 동인지' <아나하임 저널>의 뒷표지를 보면 우주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그린 전면광고 형식의 일러스트가 나오는데... 무려 모노톤사의 로고가 붙어 있다;;;)
<건담 F90>처럼 선라이즈-반다이가 직접적으로 밀어주었던 프로젝트도 아니고, 시리즈 원작자 토미노 요시유키가 손댄 외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 만하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도 테스트 중인 신형기로 제간 타입이 등장하고 반지구연방 조직의 실상이 암시되는 등, <역습의 샤아>를 의식한 설정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너무 시대적으로 튀는 설정이 더 많아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게 문제다만...)
또한, 본작은 그전까지의 건담 월드에서는 무시되거나 배경 정도로 처리되었던 '전쟁 이외의 세계'에 초점을 맞춘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물론 <건담 ZZ>에서도 주인공 쥬도 아시타가 고물상이라는 직업을 가진 민간인으로 출발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처음의 모습을 잃고 '전사'로 변해 간다. 그러나 본작의 주인공 다리는 프로페셔널 정비공이자 콜로니 보수 작업원이라는 뚜렷한 커리어를 갖고, '적도 아군도 상관없이, 모두의 토양인 콜로니를 지켜야 한다'라는 신념에 불타, 초지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인공의 페이스에 다른 캐릭터들까지 말려들어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버리는 결말은 좀 비현실적이지만, '전사'가 아닌 '생활인'이자 '직업인'으로서의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건담SEED ASTRAY>의 로우 귤이 계승함으로써, 완전히 주류에 편입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재미있게도, 로우 또한 여기의 다리처럼, 삐죽머리에 헤어밴드를 하고 다니는 열혈한이다)
그밖에도 후의 G건담 등을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발상이 속출하는 점이나(무기가 떨어진 다리가 "건담 퍼~언치!"를 날리는 장면이라던가, D건담의 사투를 콜로니 내의 방송에서 보도하면서 'GUNDAM FIGHT'라는 기사 제목을 붙여놓았다던가;;;), 건담사상 최초로 결말에서 서로 맺어질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낳는(!) 주인공들이 나온다던가, 여러모로 자잘한 재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고 해도 위에 언급한 결점들을 모두 메워줄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범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에너지가 흘러넘치지만, 걸작이라 하기에는 기본기가 부족하니 뭐라 할지 참 애매한 물건이다만, 역시 괴작이란 말이 가장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ps1. 사실 몰라서 그렇지 오래된 건담계 코믹들을 뒤져보면 이거 이상으로 怪한 작품들이 장난 아니게 많다... 그 중에서도 최강급에 속하는 <마법의 소위 블라스터 마리>(이것 역시 반다이의 사이버코믹스 시리즈로 한번 나왔던 것)가 조만간 미디어웍스에서 재발매된다고 한다. 팔아먹을게 그리도 없나? 싶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좋아하기에 눈에 띄면 살지도...<벌러덩>
자아 미디어웍스! 다음엔 '사립 건담학원'의 재판을 찍어다오! 이건 원래 너희 거니까 간단할 거 아냐!! >_<
ps2. 네오지온 부대의 지휘관으로 '이리아 중령'이란 사람이 나온다.
이름이나 피부색이나 머리모양이 영락없이 ZZ의 그사람과 닮긴 했는데...
그사람은 ZZ 라스트에 가서 죽지 않던가? 역시 동명이인? 아니면 살아남아 승진?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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